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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영원한 고전 100선/문학

조제 사라마구 『눈먼 자들의 도시』-눈은 뜨고 있으나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우리에게

by venture man의 인문여정 2025. 7. 25.

인류가 반드시 읽어야 할 고전

조제 사라마구 『눈먼 자들의 도시』: 우리가 정말 보고 있는가?

“우리가 눈이 멀었다고 해서, 시력이 없어진 것이 아니다. 우리는 단지 보기를 그만두었을 뿐이다.”
"We did not go blind. We simply stopped seeing."


1. 작품 개요

포르투갈 작가 조제 사라마구의 대표작 『눈먼 자들의 도시』는 갑작스러운 ‘백색 실명’의 확산으로 사회가 붕괴되고, 인간 본성의 어두운 민낯이 드러나는 디스토피아 소설입니다. 한 남자가 운전 중 앞이 보이지 않게 되면서 시작된 실명은 빠르게 전염병처럼 번지고, 정부는 감염자들을 폐쇄된 격리 병원에 감시 속에 수용합니다.

이 병원 안에는 실명자들과 함께 유일하게 시력을 유지한 인물, ‘의사의 아내’가 있습니다. 그녀는 남편을 따라 자발적으로 지옥 같은 병동에 들어가고, 식량을 두고 벌어지는 폭력과 여성에 대한 성착취 속에서 인간 존엄의 마지막 불씨를 지키려 애씁니다.

이야기는 한 실명자의 시력이 회복되며 전환점을 맞고, 인물들은 폐허가 된 도시로 나오지만, 문명은 이미 무너지고 거리마다 시체와 쓰레기만 가득합니다. 절망 속에서 의사의 아내는 작은 공동체를 이끌며 인간성과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합니다.


2. 핵심 구절 해설

“우리가 눈이 멀었다고 해서, 시력이 없어진 것이 아니다. 우리는 단지 보기를 그만두었을 뿐이다.”

이 구절은 단순한 생리적 실명을 넘어, 도덕적 무감각, 사회적 무관심, 정치적 침묵을 뜻하는 은유입니다. 사라마구는 ‘보지 않으려는 눈뜬 자들’을 통해, 진실을 회피하고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한 현대인의 삶을 통렬하게 고발합니다.
‘본다는 것’은 단순한 시각적 행위가 아니라, 윤리적 책임과 연대의 실천임을 일깨우는 문장입니다.


3. 작가 소개: 조제 사라마구 (1922–2010)

조제 사라마구는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199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입니다. 그는 종교, 권력, 윤리, 실존을 다룬 우화적이고 철학적인 소설로 세계 문단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합니다.

그의 문체는 문장 부호를 절제하고 쉼표와 흐름 중심으로 이어지며, 독자에게 능동적인 해석을 요구하는 독특한 실험이 특징입니다. 대표작으로는 『모든 이름들』, 『복제 인간』, 『이름 없는 사람의 기억』 등이 있으며, 그 세계관은 인간 조건에 대한 끈질긴 탐구로 관통됩니다.


4. 독후감(감상): 눈은 뜨고 있으나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우리에게

『눈먼 자들의 도시』는 하나의 문학적 실험이자 철학적 우화입니다. ‘실명’은 단순한 육체적 증상이 아니라, 사회적 무책임과 집단적 맹목을 상징합니다. 작중 인물들이 모두 이름 없이 ‘의사’, ‘의사의 아내’, ‘첫 번째 실명자’처럼 불리는 것도, 위기 속에서 개인의 정체성과 고유성이 얼마나 쉽게 말소되는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가장 인상적인 인물인 ‘의사의 아내’는 유일하게 보는 존재로, 가장 고통스러운 현실을 감내하면서도 끝까지 공동체를 이끕니다. 그녀는 사라마구가 제시한 인간성의 최후의 보루이자, ‘보는 것’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살아있는 대답입니다.

이 작품은 팬데믹과 혐오, 정치적 무력감 속에서 살아가는 오늘날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정말로 보고 있는가, 아니면 눈을 감고 외면하고 있는가?”


5. 독서토론회에서 다룰 만한 질문

  • ‘실명’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생리적 실명을 넘어선, 정치적 무지와 윤리적 마비의 비유로서 실명의 의미는 무엇인가?
  • 이름이 사라진 인물들
    인물들이 이름 없이 호명되는 설정은 어떻게 정체성과 연대감을 해체하거나 강화하는가?
  • 의사의 아내는 왜 실명하지 않았는가?
    그녀는 단순한 관찰자인가, 아니면 윤리적 선택을 요구받는 ‘목격자’로서의 책임을 상징하는가?
  • 문명은 얼마나 쉽게 붕괴되는가?
    우리는 위기 상황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유지할 수 있는가? ‘사회’란 얼마나 얇은 껍질인가?
  • 현대 사회의 눈먼 상태
    이 소설이 현재의 팬데믹, 디지털 피로, 혐오와 분열 속에서 우리에게 어떤 자화상을 비추고 있는가?

6. 마무리

『눈먼 자들의 도시』는 인간이 얼마나 쉽게 눈을 감고 살아가는지를 통렬하게 묻는 작품입니다. 조제 사라마구는 이 소설을 통해 ‘본다는 것’이란 감각적 행위를 넘어선 도덕적 책임임을 역설합니다.

뉴스 화면 속 고통받는 타인, 익명의 온라인 폭력, 이웃의 외면 속에서 우리는 과연 눈을 뜨고 있는가? 아니면 익숙함과 무관심 속에 스스로 시력을 거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 책은 독서 이후에도 오래도록 우리 마음속에서 질문을 던지는 고전입니다. 그리고 그 질문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절실합니다.